17세기 영국을 점령한 커피
커피는 정신을 맑게 해 대화와 토론을 활성화시켰다. 1674년 무명의 한 영국 시인은 커피를 일컬어 “아픈 속을 낫게 하고, 천재를 더욱 기민하게 하며, 기억을 돕고, 슬픈 이를 되살리며, 기운을 북돋는, 그러나 취하지는 않는, 엄숙하고 건전한 술"이라고 칭송했다. 이것이 영국에서 커피하우스가 유행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다.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에 대해서는 아래글을 참고하면 된다.
카페의 시초 커피하우스
오늘날 우리가 즐겨 찾는 카페의 시초는 커피하우스(Coffee House)다. 커피는 1600년대 초에 처음으로 영국에 들어왔고, 1652년에는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가 런던에서 문을 열었다. (때때로 옥스퍼드라는 기록도 있다.) 북적거리는 콘힐(Cone Heel) 지역의 세인트미카엘성당 묘지 근처에서 처음 커피를 팔기 시작한 이 커피하우스는 사실 카페라기보다는 작은 노점상에 가까웠다.
커피 노점을 연 주인공인 파스카 로지(Pasqua Rosee)는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부인인 데다 새로운 경쟁자인 그를 런던의 선술집 주인들이 곱게 봐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수완 좋은 사업가였던 로지는 런던 출신의 크리스토퍼 보먼(Christopher Bowman)과 손잡고 사업을 키워나갔으며, 커피의 마법 같은 효능이 알려지면서 그의 커피 노점은 큰 인기를 끌었다. 로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노점이 있던 곳의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겨 큰 커피하우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 후 런던에는 커피하우스가 그야말로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파스카 로지의 커피하우스가 처음 영업을 시작한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런던에만 100개에 달하는 커피하우스가 생겼으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도 커피하우스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18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커피하우스가 1,0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커피하우스의 특징
커피하우스에는 정해진 자리도 계급에 따른 차별도 없었으며, (여성만 빼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상인에서부터 정치인, 로비스트, 지식인, 과학자, 언론인, 학자, 시인, 평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커피하우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업을 의논하거나 '화로 위에 놓인 주전자와 거름망, 국자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배경 삼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자유로운 주제로 이루어지는 대화와 토론에 참여했다.
존 스타키(John Starkey)는 <커피와 커피하우스의 특징 (A Character of Coffee and Coffeehouses)》(1661)에서 당시의 커피하우스 문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커피하우스에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이곳에는 정해진 자리가 없으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면 누구나 의자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다. 평등이라는 이러한 위대한 특권은 인류의 황금시대와 커피하우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다."
1 페니 대학 커피하우스 폐쇄령
커피하우스는 정치 얘기를 나누기에 그야말로 최적인 장소였고, 심지어 이곳에서 정권을 잡은 자들에 대한 불만이나 반역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이를 우려한 영국 국왕 찰스 2세(1660-1685)는 런던의 커피하우스 곳곳에 스파이를 심어두기도 했고, 1675년에는 커피하우스 폐쇄령을 선포하기까지 했다. 찰스 2세는 사람들이 커피하우스 때문에 "마땅한 직분과 의무를 잊고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커피하우스 운영자와 정치인들이 합심해 반발한 탓에 결국 폐쇄령은 통과되지 못했다.
17세기말이 되자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1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커피하우스에서 1 페니를 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새로운 과학적 사고를 구축하기도 하고, 다양한 가설과 이론을 시험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커피하우스는 당시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물리학 실험의 주요 무대가 되기도 했다.
특정 사업이나 예술 분야에 특화되어 관련 정보를 나누고 토론하며 배울 수 있는 커피하우스들도 다수 생겨났다. 세인트폴대성당의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과 과학자인 로버트 훅(Robert Hooke)도 그레시안(Grecian), 갤러웨이스(Garraways) 등의 커피하우스를 드나들던 단골 중 하나였다.
아이작 뉴턴이 처음으로 중력 이론에 대해 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rincipia)》는 1687년에 출간되었는데, 이 위대한 저작이 탄생한 데는 사과의 낙하보다 케임브리지 커피하우스의 공이 더 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스코틀랜드 출신 학자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런던의 브리티시 커피숍(British Coffee Shop)에서 경제학 분야에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저서로 꼽히는《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의 상당 부분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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