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황금 커피
유럽의 커피 소비량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18세기 초가 되자 유럽 국가들은 수입(아랍) 커피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인들은 인도의 말라바(Malabar) 지역과 네덜란드령 실론(Ceylon, 스리랑카) 지역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고, 1699년에는 자바섬에 있는 바타비아(Batavia, 자카르타의 옛 이름)로 묘목을 옮겨 심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 암스테르담에는 네덜란드인들이 재배한 자바커피 360kg이 처음으로 들어왔고, 이 커피는 모두 고가에 팔려나갔다. 이로써 아랍 국가들의 커피 독점은 무너졌고, 곧 등장한 거대기업 동인도회사가 실어 나르는 자바섬의 커피가 유럽에서 소비되는 커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자바는 쭉 커피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네덜란드인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커피 재배를 막 시작할 즈음, 프랑스 또한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섬에서 동쪽으로 800km 떨어진 부르봉(Bourbon, 버번, 현재의 레위니옹섬)에 작은 커피나무를 가져다 심었다. 커피나무의 출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프랑스인들이 자바에서 가져왔다는 말도 있고,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게서 선물로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커피가 부르봉섬에 자생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인들이 커피나무를 손에 넣은 경로야 어떻든 간에 부르봉섬에서 재배는 커피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된다. 그곳에서 변종이 생겨나 현재 버번(혹은 부르봉)종으로 알려진 새로운 커피 품종이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버번종은 다른 일반적인 품종인 타이피카(Typica)종에 비해 수확량이 20%가량 높다. 이 새로운 품종을 발견한 사람은 1711년 부르봉섬을 방문한 한 프랑스 관리였는데, 당시 문헌을 보면 “열매가 빽빽하게 달린 3~3.5미터 높이의 야생 커피나무를 발견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품종은 150년 후 브라질로 이식되었고, 특유의 깔끔한 산미와 뛰어난 밸런스로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품종 중 하나가 되었다. 버번은 다양한 변이와 교배를 통해 현재 20여 종의 품종으로 분화되었다.
커피 원두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래글을 참고하면 된다.
루이 14세의 커피나무
서인도제도에서 최초로 커피를 재배한 것은 네덜란드였을 가능성이 높다. 1713년 무렵 네덜란드는 식민지로 두고 있던 기아나(남아메리카의 북동쪽 지역의 수리남)에 커피나무를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커피의 아메리카대륙 전파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일화는 사실 따로 있다. 바로 네덜란드가 수리남에서 커피 재배를 시작한 지 7년 후인 1720년, 프랑스 해군 장교 가브리엘 드 클리외(Gabriel de Clieu)가 커피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대서양을 건넌 이야기다.
커피를 둘러싼 클리외의 모험담은 1774년 판 〈문예연감(Année Littéraire)〉(문학 비평이나 독자 투고 등을 소개하던 프랑스 잡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물론 어디까지 믿을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겠지만, 어쨌든 그의 대모험은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로 제작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니 한번 들여다보자.
클리외는 사탕수수가 잘 자라는 지역이라면 커피도 재배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마땅한 장소를 물색한 끝에 프랑스령 마르티니크(Martinique)가 적합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커피 묘목을 어디서 구할지가 문제였다. 당시 프랑스에는 커피 묘목이 딱 한 그루 있었다. 암스테르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선물한 것으로, 왕실 정원에 고이 모셔져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았다. 궁리 끝에 클리외는 잘생긴 외모와 매력을 총동원해 한 상류층 여성을 유혹했고, 적당한 협박을 곁들여 온실에 있던 묘목을 훔쳐내도록 했다.
묘목을 손에 넣은 클리외는 지체 없이 마르티니크행 해군 함선에 올랐다. 커피 묘목은 직접 제작한 유리용기에 안전하게 담은 채였다. 마르티니크로 향하는 여정이 실제 어땠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클리외의 모험담에 따르면 거센 폭풍과 튀니지 해적의 공격, 네덜란드 스파이의 마수에서 묘목을 지켜내야 했다고 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이파리가 몇 개 뜯겨나가긴 했지만 말이다.) 클리외는 굶주림과 바다 괴물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았다. 항해 막바지 몇 주 동안은 물이 모자랐는데, 클리외는 소중한 묘목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몫의 식수를 아껴가며 물을 주었다.
이러한 고생이 헛되지 않았는지 묘목은 무사히 마르티니크에 도착했고, 그 종자로 커피를 번식시킬 수 있었다. 정확한 숫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설에 따르면 마르티니크의 커피나무는 9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만 그루로 불어났다고 한다. 마르티니크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여타 프랑스령 제도들 또한 꺾꽂이를 할 커피나무 가지나 묘목을 구해와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카리브해와 중남미 지역의 커피농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커피는 콜롬비아에서는 1723년, 브라질에서는 1727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커피가 브라질에 전파된 것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얘기가 있는데, 바로 프랑스령 가이아나 총독의 부인이 커피 묘목을 꽃다발 속에 숨겨 한 브라질 중령에게 몰래 전했다는 것이다. 이어 자메이카에는 1728년, 베네수엘라에는 1730년에 전파되었으며, 히스파니올라(현재의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에는 1735년, 과테말라에는 1747년, 그리고 쿠바에는 1748년에 전해졌다.
1780 년이 되자 아이티(Haiti)의 산 도밍고(San Domingo)는 세계 커피 공급량의 절반가량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메리카대륙의 모든 커피는 물론이고 당시 상업적으로 생산되던 거의 모든 커피의 역사는 1713년 루이 14세의 정원에 심어져 있던 커피나무 한그루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많은 커피나무가 1713년 루이 14세의 왕실 정원에 있던 단 한 그루의 커피나무에서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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