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수저의 성공심리학

세계 최초 커피하우스 터키의 키바 한(Kiva Han) 커피 발견 전설

by 슬리피 2023. 11. 7.
반응형

커피에 관한 전설

커피의 발견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커피를 처음 발견한 것은 칼디(Kaldi)라는 젊은 에티오피아 목동이라고 한다. (아마 이 가설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여러 버전으로 각색이 가능했기 때문이지 싶다.)

칼디는 염소를 돌보는 목동이었는데, 어느 날 저녁에 보니 한 식물의 잎사귀와 빨간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유난히 힘차게 뛰놀고 있었다. 호기심에 그 열매를 직접 먹어보았더니 효과가 단숨에 나타났다. 정신이 번쩍 들며 힘이 펄펄 났던 것이다. 카페인, 즉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약물은 한 목동에 의해 이렇게 우연히 발견되었다. 칼디가 그 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근처에 살던 마을 장로나 사제에게 커피를 전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커피의 영향으로 염소들과 함께 춤을 추며 놀게 되었다는 신화적인 이야기도 있다.

에디오피아 예가체프 커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글을 참고하면 좋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 원두 커피 역사 유래 고향 악숨 왕국

커피 역사, 그 이야기의 시작 인류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고향이기도 하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무척 단순하다. 길을 걷던 목동이 우

pearl5004.tistory.com

악숨 왕국의 침공을 받으며 커피나무가 전해진 예멘에도 자체적인 커피발견설이 있다. 이 이야기에는 예멘의 도시 모카(Mokha)의 성벽 밖으로 추방된 오마르(Omar)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황무지를 방황하며 죽음 직전까지 내몰린 오마르는 우연히 커피나무의 열매를 먹었고, 그 덕에 힘을 얻어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살아서 돌아온 것은 신의 은총 덕분이라고 생각했고, 그가 황무지에서 발견한 커피나무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커피는 곧 모카 주민들의 인기 음료가 되었다.

커피, 향과 취기로 재판을 받다

아랍 문화에서도 커피를 발견할 수 있다. 아랍인들은 커피로 만든 음료를 까후와(Qwaha)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랍어로 '술'을 뜻한다. 이슬람교에서 음주를 금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 커피는 이들이 마실 수 있는 음료 중술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커피는 밤샘 기도가 필요한 이슬람 종교의식에 자주 활용되었고, 이슬람교와 함께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유럽이 아직 중세 암흑기를 헤매던 시기에 아랍 세계에서는 커피나무 씨앗(원두)을 말리고 볶아 가루를 내어 우리가 지금 커피라고 부르는 음료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것 같다. 기록상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 역시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의 키바 한(Kiva Han)이다.(기록에는 없지만 커피 무역이 번성한 예멘에서 15세기 말경 먼저 생겨났을 가능성도 있다.)

커피는 아랍 국가들의 중요한 교역 상품이 되었다. 그런데 커피가 인기를 얻자 그 각성효과를 마뜩잖게 생각하는 권력자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일은 역사 속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메카(Mecca)의 총독이었던 카이르 베이(Kha'ir Bey)는 1511년 실제로 커피 주전자를 율법학자들 앞에 놓고 재판을 진행하기도 했다. 커피가 '사람들을 취하게 하거나 법이 금하는 무질서한 행동을 하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총독은 결국 커피 금지령을 내렸다. 처음에는 이 금지령이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커피는 거리 곳곳에서 불태워졌고 커피하우스는 폐쇄되었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더 높은 곳에서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고 금지령은 철회되었다. 그 후 약 200년 동안 중동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술탄, 총독, 왕을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이 유사한 금지령을 시행하고 철회하기를 반복했다.

일찍부터 커피의 가치를 깨달은 오스만제국

오스만 제국은 영리했다. 1517년 예멘을 정복한 뒤 커피의 높은 상품성을 깨닫고는 예멘 외의 지역에서 커피가 재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커피 수출을 법으로 엄격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당시 예멘에서 생산된 커피는 수에즈까지 해로로, 다시 알렉산드리아까지 육로로 운반되어 그곳에서 유럽항으로 수출되었다. 커피 씨앗의 반출을 막고 싶었던 오스만인들은 커피콩을 물에 끓이거나 살짝 볶은 다음에 수출했다. 한동안은 이 방법이 통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누군가 씨앗을 몰래 빼냈고, 이렇게 반출된 커피는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재배되었다. 최초로 커피 씨앗을 반출한 사람은 인도에서 온 순례자 바바 부단(Baba Budan)으로 전해진다. 커피 씨앗을 배에 끈으로 동여매어 숨겨 나왔다고 한다.

커피, 투르크를 통해 유럽에 알려지다

커피는 16세기 말경부터 유럽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커피에 대한 설명과 삽화가 최초로 등장하는 책은 이탈리아의 식물학자인 프로스페르 알피누스(Prosper Alpinus)의 《이집트 식물도감(Book of Egyptian Plants)》(1592)이다. 알피누스는 자신의 책에 투르크 인들이 커피 열매로 즙이나 음료를 만들어 마신다고 기록했다. 이국적인 커피나무와 그 열매로 만든 이 투르크 음료에 대한 이야기는 네덜란드 의사 팔루다누스(Paludanus)의 《여행기 (Itinerario)》(1596)에도 등장한다.

“투르크 인들은 매일 아침 방 안에서 공복에 이 음료를 마신다. 토기 주전자에서 따라 마시는 이 음료는 매우 뜨겁다. […………] 투르크 인들에 따르면 이 음료는 원기를 북돋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방귀 배출을 돕고 소화불량을 해소해 준다."

1610년 무렵 오스만 제국의 화려한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였다.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는 단연 코파(Coffa), 즉 커피였다. 강력한 오스만 제국의 음료는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어쨌든 오스만은 당시까지 존재한 그 어떤 국가보다도 거대한 제국이었고 북아프리카에서 동유럽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럽의 식물학자들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커피나무와 그 열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일반인들도 코파 음료의 이로운 효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반응형

댓글